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벌써부터 공천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작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서민들의 신음소리는 외면한 채, 공천장 하나 받으려 줄 서는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쯤에서 고려시대 대문장가 이규보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는 한때 과거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고 산속에서 책만 읽으며 지냈다. 그런 그가 대문에 내건 글귀는 이랬다.
“唯我無蛙 人生之恨(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사연은 이렇다.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 시합을 벌이기로 했는데, 심판으로 백로를 정했다. 꾀꼬리는 정정당당하게 노래 연습에 매진했지만, 까마귀는 백로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뇌물로 바쳤다. 결과는?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꾀꼬리는 이후 대문에 저 글귀를 붙였다.
이규보는 이를 통해 뇌물 없인 과거에 급제할 수 없었던 당시 세태를 풍자했다. 이 말을 들은 의종 임금은 그에게 감탄해 임시 과거를 열었고, 결국 이규보는 장원급제했다.
그로부터 약 1,000년이 흐른 지금, 지방선거를 앞둔 정가의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전히 '개구리(와이로)'를 잡느라 분주한 후보자들, 감동적인 자기소개서 몇 줄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넘쳐난다. 정작 꾀꼬리 같은 인물은 대문만 지키고 있는 건 아닌가.
공천과 선거, 감동 이전에 정직함과 실력이 먼저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라는 꾀꼬리의 절규를 지금의 정치인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때다.